여가생활/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서문 - 비틀기와 뒤집기

JNKIM 2012. 3. 19. 10:56

안목의 타성에 가려져 있던 사물의 일면을 갑작스레 드러내 보이면 우리의 감수성은 그 새로움에 긴장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설로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되어서 지금껏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그런 새로운 진실은 흔치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서의 단언은 우리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늘상 새로움을 대하듯 긴장한 감수성으로 소설을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째서 이제는 알 만큼 안 사람의 이야기에 아직까지도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드는 것일까. 또 작가들은 무슨 뻔뻔스러움으로 자신이 인물을 '창조'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기는 하되 까닭은 아마도 그들의 이야기 방식과 그 효과에 있을 것이다. 사물의 어떤 일면을 과장하거나 축소해버리면 익숙한 것도 생소해진다. 뒤틀거나 엇바꾸어 놓으면 평범한 것도 특이해 보이고, 느닷없는 끼어들기로 습관적인 추론을 헝클어 놓거나 뜻밖의 뒤집기로 예상을 엎어버리면 일상적인 것도 탈속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새로움을 대하는 것과 같은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낯설게 하기'란 말도 그런 이야기 방식과 효과에 대한 고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과장과 축소, 뒤틀기와 엇바꿈, 그리고 비꼼 같은 변형의 방식을 '비틀기'란 말로 묶고 논리의 느닷없는 일탈과 끼어들기나 충격적인 반전을 아울러 '뒤집기'란 말로 묶어 작품을 골라 보았다. 여지껏 주제로 묶어오다가 갑자기 기법을 중심으로 묶는 게 일관성이 없어 보일지는 모르나 특별히 강조해도 좋을 단편의 특징적인 기법이라 억지를 부렸다. 그럭저럭 열 편을 고르기는 해도 왠지 더 좋은 전범이 될 만한 작품들이 빠진 듯해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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